「포스트 21」 2026년 2월호 <“회사 컴퓨터에 저장된 설계도를 출력해 가져갔다면, 절도죄가 될까?”>
법률칼럼 | 김한설 변호사의 사례로 보는 법률상식 ⑪
“회사 컴퓨터에 저장된 설계도를 출력해 가져갔다면, 절도죄가 될까?”
- 사례 -
A는 자신이 근무하던 회사의 연구개발실에서 회사 노트북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던 설계도 파일을 A2 용지로 출력해 외부로 가지고 나왔다. 해당 설계도는 회사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시스템과 관련된 자료였고, 외부에는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부적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A는 회사의 허락 없이 이 설계도를 출력해 반출했다. 이 경우 A의 행위는 형법상 절도죄에 해당할까.
절도죄에서 말하는 ‘재물’이란
절도죄는 타인의 재물을 절취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다(형법 제329조). 따라서 이 사건에서도 회사 설계도를 출력해 가지고 나온 행위가 절도에 해당하는지를 살펴보려면, 그 대상이 형법이 말하는 ‘재물’에 해당하는지부터 문제된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절도죄의 객체와 절도 행위의 성격에 대해 “절도죄의 객체는 관리 가능한 동력을 포함한 ‘재물’에 한한다 할 것이고, 또 절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 재물의 소유자 기타 점유자의 점유 내지 이용가능성을 배제하고 이를 자신의 점유하에 배타적으로 이전하는 행위가 있어야만 한다(대법원 2002. 7. 12. 선고 2002도745 판결)”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대법원은 절도죄에서 문제 되는 대상이 형법상 재물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함께, 그 재물에 대한 점유나 이용가능성이 실질적으로 배제되었는지까지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였다.
쟁점 ① 정보 자체는 절도죄의 객체가 될 수 있을까?
이 사건에서 먼저 문제 되는 것은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던 설계 자료의 정보 그 자체다. 설계자료는 회사 입장에서 상당한 경제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절도죄에서 말하는 재물은 모든 경제적 가치를 가진 대상을 포괄하는 개념은 아니다. 형법상 재물은 기본적으로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는 유형의 물건, 즉 유체물을 전제로 하며, 예외적으로 전기처럼 물질성은 없지만 관리·통제가 가능한 동력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에 대해 “유체물이라고 볼 수도 없고, 관리 가능한 동력도 아니므로 재물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대법원 2002. 7. 12. 선고 2002도745 판결). 아울러 대법원은, “이를 복사하거나 출력했다 할지라도 그 정보 자체가 감소하거나 피해자의 점유 및 이용가능성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므로 그 복사나 출력 행위를 가지고 절도죄를 구성한다고 볼 수도 없다”고 하여 설령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를 복사하거나 출력했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만으로 곧바로 절도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대법원 2002. 7. 12. 선고 2002도745 판결).
쟁점 ② 출력된 설계 도면은 회사의 재물로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를 종이에 출력해 만든 설계 도면 자체는 절도죄의 객체가 될 수 있을까? 이 사건에서 문제 된 설계 도면은 회사가 업무상 보관, 관리하던 기존 문서를 반출한 것이 아니라, 피고인이 외부로 가지고 나갈 목적으로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를 새로 출력해 만든 문서였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피고인에 의하여 출력된 위 설계 도면은 피해 회사의 업무를 위하여 생성되어 피해 회사에 의하여 보관되고 있던 문서가 아니라, 피고인이 가지고 갈 목적으로 피해 회사의 업무와 관계없이 새로이 생성시킨 문서라 할 것이므로, 이는 피해 회사 소유의 문서라고 볼 수는 없다 할 것이어서, 이를 가지고 간 행위를 들어 피해 회사 소유의 설계 도면을 절취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하여 출력물이라는 형태를 갖추었다고 해서 곧바로 회사 소유의 문서로 평가할 수는 없고, 이를 가지고 간 행위를 회사 소유의 설계 도면을 절취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는 취지를 밝혔다(대법원 2002. 7. 12. 선고 2002도745 판결).
물론 출력에 사용된 종이 자체는 회사 소유의 물건일 수 있다. 다만 이 사건에서 문제 된 것은 설계 정보의 반출이지, 출력에 사용된 종이 몇 장의 취득이 아니었고, 그 재산적 가치 역시 극히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 이러한 사정을 종합해 대법원은 설계 도면 출력물을 가져간 행위가 회사의 점유나 이용 가능성을 배제한 절취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절도죄의 성립을 부정하였다.
절도가 아니라고 해서 문제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에서 설계도 반출 행위는 형법상 절도죄의 객체인 ‘재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절도죄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나 그 출력물은 재물 개념에 그대로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판단의 출발점이 된다. 다만 이러한 결론이 해당 행위가 법적으로 아무 문제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설계도나 기술 정보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부정경쟁방지법이나 영업비밀 보호법 위반으로 문제 될 수 있고, 사안에 따라 민사상 책임이 함께 검토될 여지도 있다. 이 판결은 ‘가치 있는 정보인가’라는 질문 이전에 절도죄가 보호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그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에 대해 정리해 준 사례로 이해할 수 있다.
김한설 변호사
현재 충북 청주 및 서울에서 형사, 부동산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본지의 법률 자문위원으로, 법률지식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2026.03.18
「포스트 21」 2025년 12월호 <“성관계 동의는 받았지만, 성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에 대해 속…
법률칼럼 | 김한설 변호사의 사례로 보는 법률상식 ⑩
“성관계 동의는 받았지만, 성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에 대해 속인 경우 위계간음죄가 성립할까”
- 사례 -
36세 남성 A는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14세 소녀 B를 알게 되었다. A는 처음부터 자신을 ‘고등학교 2학년 학생 C’라고 속여 신뢰를 쌓았고, 두 사람은 오프라인 대면 없이 메시지와 통화로 온라인상 교제를 이어갔다. 이후 A는 “나(C)를 스토킹하는 여성이 있는데, 나에게 집착을 해서 너무 힘들다. 죽고 싶다. 우리 그냥 헤어질까”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스토킹하는 여성을 떼어내려면 나의 선배(A)와 성관계하면 된다.”고 말했다. B는 그 말을 믿고 C와 헤어지는 것이 두려워 제안을 받아들였으나, 실제 ‘선배’는 A였다. A는 B를 만나 ‘C의 선배’로 행세하며 B와 성관계를 가졌다.
위계간음죄의 의미 및 사건의 쟁점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7조 제5항은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아동·청소년을 간음하거나 아동·청소년을 추행한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강간죄는 저항할 수 없는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을 통해 간음으로 나아간 경우를 처벌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위계간음죄는 폭행이나 협박을 수반하지 않더라도, 아동·청소년인 피해자로 하여금 오인·착각·부지를 불러일으키는 속임수(위계)를 이용해 성관계를 하면 처벌된다.
위 사건의 핵심은 바로 이 ‘위계’의 인정 범위였다. A는 B에게 폭행이나 협박을 한 적이 없다. 다만, 허위의 상황과 인물을 꾸며내 B에게 성관계에 이르게 된 중요한 또는 결정적인 ‘동기’에 대해 오인·착각·부지를 일으켰다. A를 처벌해야 할까?
과거 대법원 판례 : 성행위에 부가된 조건·동기 등을 기망하여 착각을 일으킨 경우에는 위계로 보지 않았음
과거 대법원은 ‘성행위 자체’에 대한 인식의 착오만 위계로 인정했다. 미성년자나 정신장애자가 성관계의 의미 자체를 모르는 경우, 예컨대 “재미있는 놀이”라고 속여 성관계했다면 성행위 자체에 대한 위계로서 처벌된다는 것이다. 이에 해당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실제로 처벌사례가 거의 없다.
과거 판결의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피고인은 미성년자인 피해자에게 “성관계를 맺으면 돈을 주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피해자는 금전적 약속을 믿고 피고인의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이후 돈을 받지 못하자 위계간음죄로 고소했으나 무죄 판결이 선고됐다.
대법원은 “오인, 착각, 부지란 간음행위 자체에 대한 오인·착각·부지를 말하는 것이지, 간음행위와 불가분적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 다른 조건에 관한 오인·착각·부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여, 피해자의 동기가 단순히 ‘돈을 받기 위한 기대’에 그친 경우에는 위계간음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다(대법원 2001. 12. 24. 선고 2001도5074 판결). 성매매나 ‘조건 만남’을 하기로 하고 돈을 주지 않은 경우에는 ‘이유나 대가’를 속인 것일 뿐, 성행위 자체의 착각이 아니라는 이유로 위계간음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변경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 성관계에 이르게 된 결정적인 동기를 기망하여 착각을 일으킨 경우에도 처벌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기존 입장을 전향적으로 바꾸었다. “성행위 자체”를 속인 경우뿐 아니라 성행위에 이르게 된 중요한 또는 결정적인 이유나 대가를 거짓으로 꾸며 상대방의 판단을 흐리게 한 경우에도 위계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성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를 기망하여 착각을 일으킨 경우 ‘성적인 자기 결정권’이 침해된 것이고, 아동·청소년 등 취약계층의 시각에서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즉,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고 피해자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의 목적을 달성했다면 위계와 간음행위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고, 따라서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한다.”, “피해자가 오인, 착각, 부지에 빠지게 되는 대상은 간음행위 자체일 수도 있고, 간음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이거나 간음행위와 결부된 금전적·비금전적 대가와 같은 요소일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20. 8. 27. 선고 2015도9436 전원합의체 판결).
또한 “행위자의 위계적 언동이 존재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위계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므로 위계적 언동의 내용 중에 피해자가 성행위를 결심하게 된 중요한 동기를 이룰 만한 사정이 포함되어 있어 피해자의 자발적인 성적 자기 결정권의 행사가 없었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인과관계를 판단할 때에는 피해자의 연령 및 행위자와의 관계,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 범행 당시와 전후의 상황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보았다(대법원 2020. 8. 27. 선고 2015도9436 전원합의체 판결).
변경된 대법원 판례가 가지는 의의
이번 판결의 취지는 아동·청소년, 미성년자, 심신미약자, 피보호자·피감독자,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성적 자기결정 능력을 보호하기 위해, 상대방으로부터 기망행위를 당하거나 심리적인 지배관계 속에서 이용당하지 않도록 ‘위계’의 해석 범위를 넓힌 것이다.
위 사건은 36세 성인이 14세 미성년자에게 ‘고등학생’을 가장하고 온라인 친분 관계를 맺은 뒤, 첫 대면 자리에서 ‘선배’로 행세하며 성관계를 맺은 경우다. 대법원은 이를 피해자의 현실적 판단능력이 왜곡된 상황으로 보고, 그의 의사결정이 자유롭지 못했고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성관계를 가진 행위를 범죄로 판단했다.
김한설 변호사
현재 충북 청주 및 서울에서 형사, 부동산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본지의 법률 자문위원으로, 법률지식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다.
2026.02.23
「포스트 21」 2025년 11월호 <“직접 만지지 않아도,협박하여 피해자 스스로 자신의 신체를 만지게 한 …
법률칼럼 | 김한설 변호사의 사례로 보는 법률상식 ⑨
“직접 만지지 않아도, 협박하여 피해자 스스로 자신의 신체를 만지게 한 경우에도 강제추행?”
- 사례 -
A는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알게 된 피해자들의 은밀한 신체 사진과 개인정보를 확보했다. 그는 이를 빌미로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고, 피해자들은 겁에 질려 어쩔 수 없이 나체나 속옷 차림의 사진을 촬영해 전송하거나 성기에 이물질을 삽입하고 자위하는 동영상을 보내야 했다. A는 협박죄나 강요죄 외에, 강제추행죄로 처벌될까?
자수범과 간접정범의 개념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하여 사람을 추행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다(형법 제298조). 강제추행죄는 일반적으로 범죄자가 피해자의 신체를 직접 만지는 형태, 즉 ‘직접적인 신체접촉’을 통하여 일어난다. 그런데 위 사례에서는 협박을 통해 피해자 스스로 피해자 자신의 신체를 만지게 하는 등의 행위가 있었으나, A와 피해자 사이에 직접적인 신체접촉은 없었다. 신체접촉을 ‘직접’ 행하는 경우에만 강제추행죄(정범·正犯)가 성립한다고 정의할 수도 있다.
자신이 직접 범죄를 저질렀을 때에만 정범으로서의 범죄가 성립하고, 타인을 이용해서 저지를 수 없는 범죄를 ‘자수범(自手犯)’이라고 한다. 위증죄가 자수범의 대표적인 예시인데, 법정에서 선서한 증인이 아니라면, 증인에 대하여 위증하도록 만들었더라도 교사범이나 방조범 등이 성립할 뿐 위증죄의 정범이 되지는 못한다. 반면에 타인을 ‘생명 있는 도구’로 이용하여 범죄를 실행하는 경우에 간접정범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간접정범으로 처벌될 수 있다.
예를 들면 형법상 책임능력이 없는 14세 미만의 자를 꾀어 절도를 시키거나 정신병자로 하여금 타인에게 폭행을 가하는 경우이다. 우리 형법 제34조 제1항은 “어느 행위로 인하여 처벌되지 아니하는 자 또는 과실범으로 처벌되는 자를 교사 또는 방조하여 범죄행위의 결과를 발생하게 한 자는 교사 또는 방조의 예에 의하여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약 강제추행죄를 자수범으로 본다면 위 사례는 피해자가 스스로 행한 성추행으로서 강제추행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피해자 자신을 도구로 이용한 간접정범
이에 대해 대법원은 A에 대하여 강제추행죄 성립을 인정하였다. 강제추행죄는 자수범이 아니고, 피해자들을 이용하여 피해자들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였다고 본 것이다.
즉, 대법원은 “강제추행죄는 처벌되지 아니하는 타인을 도구로 삼아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하는 간접정범의 형태로도 범할 수 있다. 여기서 강제추행에 관한 간접정범의 의사를 실현하는 도구로서의 타인에는 피해자도 포함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피해자를 도구로 삼아 피해자의 신체를 이용하여 추행행위를 한 경우에도 강제추행죄의 간접정범에 해당할 수 있고, 피고인이 피해자들을 협박하여 겁을 먹은 피해자들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나체나 속옷만 입은 상태가 되게 하여 스스로를 촬영하게 하거나, 성기에 이물질을 삽입하거나 자위행위를 하는 등의 행위를 하게 하였다면, 이러한 행위는 피해자들을 도구로 삼아 피해자들의 신체를 이용하여 그 성적 자유를 침해한 행위로서, 그 행위의 내용과 경위에 비추어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며 피고인의 행위 중 위와 같은 행위들은 피해자들을 이용하여 강제추행의 범죄를 실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18. 2. 8. 선고 2016도17733 판결).
물론 위 사례에 대해서 협박, 강요, 통신매체이용음란죄는 몰라도, 이러한 ‘원격 추행’까지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다는 시각도 있다.
원심은 “강제추행죄가 성립하기 위하여 반드시 신체적 접촉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신체적 접촉이 없는 경우에도 추행으로 인정하기 위하여는 성적 수치심 내지 혐오감의 정도나 그로 인한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가 피해자의 신체에 대한 접촉이 있는 경우와 비교하여 동등한 정도로 평가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원심 법정에서 적법하게 채택, 조사된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사정, 즉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피해자들과 다른 장소에 있으면서 휴대전화를 통하여 협박하여 사진 및 동영상 등을 전송받은 것으로 피해자들의 신체에 대한 즉각적인 접촉 또는 공격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피해자들로서도 사법기관에 신고 등을 통하여 피고인으로부터의 위와 같은 요구나 상황을 피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특히 서약서를 작성한 행위 그 자체를 성적인 것으로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의 위 각 행위를 피해자의 신체에 대한 접촉이 있는 경우와 동등한 정도로 성적 수치심 내지 혐오감을 주거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6. 10. 19. 선고 2016노83 판결).
김한설 변호사
현재 충북 청주 및 서울에서 형사, 부동산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본지의 법률 자문위원으로, 법률지식을 읽기 쉽게 전달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다.
2026.02.21
「포스트 21」 2025년 8월호 <“싫다는 상대에게 성적 접촉하면 순간적인 행위이더라도 강제추행”>
법률칼럼 | 김한설 변호사의 사례로 보는 법률상식 ⑧
“싫다는 상대에게 성적 접촉하면 순간적인 행위이더라도 강제추행”
- 사례 1 -
A는 배우자가 경영하는 식당의 지하실에서 종업원들인 피해자(35세의 유부녀) 및 다른 사람들과 노래를 부르며 놀던 중 다른 종업원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피해자를 뒤에서 껴안고 블루스를 추면서 피해자의 유방을 만졌다.
의사에 반하는 성적 접촉이 있으면 그 힘의 대소강약(大小强弱) 불문하고 강제추행
강간죄는 상대방의 반항을 억압하거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강한 폭행 또는 협박을 통해 피해자를 간음하는 범죄이다. 그런데 위 사례에서 A는 피해자의 뒤에서 껴안고 가슴을 만졌는데, 이 정도는 상대방이 충분히 피하거나 뿌리칠 수 있었던 걸로 보인다. 폭행의 정도로만 따지면 상대방이 저항을 못하게 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이 경우에도 강제추행죄가 성립할까.
대법원은 “강제추행죄는 상대방에 대하여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하여 항거를 곤란하게 한 뒤에 추행행위를 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폭행행위 자체가 추행행위라고 인정되는 경우도 포함되는 것이며, 이 경우에 있어서의 폭행은 반드시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의 것임을 요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는 이상 그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한다.”고 보았다(대법원 2002. 4. 26. 선고 2001도2417 판결).
즉, A가 피해자와 춤을 추면서 피해자의 가슴을 만진 행위가 순간적인 행위에 불과하더라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행하여진 유형력의 행사에 해당하고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입장에서도 추행행위라고 평가될 수 있는 것으로서, 폭행행위 자체가 추행행위라고 인정되어 강제추행에 해당한다고 평가한 것이다.
- 사례 2 -
B는 밤에 술을 마시고 배회하던 중 버스에서 내려 혼자 걸어가는 피해자(여, 17세)를 발견하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뒤따라가다가 인적이 없고 외진 곳에서 가까이 접근하여 껴안으려 하였으나, 피해자가 뒤돌아보면서 소리치자 그 상태로 몇 초 동안 쳐다보다가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심지어, 접촉이 없었더라도 추행의 고의로 즉행했다면 강제추행 미수 성립 가능
사례 1에서 A는 피해자를 만졌지만, B는 피해자를 껴안으려다가 얻지 못하고 되돌아갔을 뿐이다. B가 추행의 고의로 순간적이나마 폭행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 강제추행미수죄가 성립할 것이다. B가 폭행을 가하였다고 볼 수 있을까.
대법원은 “피고인과 갑의 관계, 갑의 연령과 의사,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와 당시 상황, 행위 후 갑의 반응 및 행위가 갑에게 미친 영향 등을 고려하여 보면, 피고인은 갑을 추행하기 위해 뒤따라간 것으로 추행의 고의를 인정할 수 있고, 피고인이 가까이 접근하여 갑자기 뒤에서 껴안는 행위는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갑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에서 그 자체로 이른바 ‘기습추행’ 행위로 볼 수 있으므로, 피고인의 팔이 갑의 몸에 닿지 않았더라도 양팔을 높이 들어 갑자기 뒤에서 껴안으려 하는 행위는 갑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로서 폭행행위에 해당하며, 이때 ‘기습추행’에 관한 실행의 착수가 있는데, 마침 갑이 뒤돌아보면서 소리치는 바람에 몸을 껴안는 추행의 결과에 이르지 못하고 미수에 그쳤으므로, 피고인의 행위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강제추행미수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15. 9. 10. 선고 2015도6980 판결).
반면에 원심은 “기습추행에 해당하지 아니하므로(그 행위 자체로 피해자에 대한 추행행위에 해당하는 폭행행위가 존재하지 아니한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반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을 개시하였을 때에 강제추행죄의 실행의 착수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피고인이 피해자를 뒤따라 가다가 1m 정도 간격을 두고 양팔을 높이 들어 벌린 자세를 취한 행위나 몇 초 동안 피해자를 빤히 쳐다본 행위만으로는 피해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하는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이라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러한 폭행·협박을 인정한 증거도 없다. 따라서 피고인의 위 행위만으로 강제추행의 실행의 착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5. 4. 24. 선고 2015노226 판결).
김한설 변호사
현재 충북 청주 및 서울에서 형사, 부동산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본지의 법률자문위원으로, 법률지식을 읽기 쉽게 전달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다.
2026.02.20
「포스트 21」 2025년 7월호 <“상대방이 만취한 줄 알고 성관계했는데 알고 보니 만취하지 않았던 경우,…
법률 칼럼 | 사례로 보는 법률상식 ⑦
“상대방이 만취한 줄 알고 성관계했는데 알고 보니 만취하지 않았던 경우, 준강간의 불능미수?”
- 사례 -
김씨는 김청주를 다음과 같이 강간죄로 기소하였다. “김청주는 밤에 자신의 집에서 배우자, 피해자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다음날 01:00경 배우자가 먼저 잠이 들고, 02:00경 피해자도 안방에 들어가자 피해자를 따라 들어간 뒤, 누워 있는 피해자의 옆에서 피해자의 가슴을 만지고 팬티 속으로 손을 넣어 음부를 만지다가, 몸을 비틀고 소리를 내어 상황을 벗어나려는 피해자의 입을 막고 바지와 팬티를 벗긴 후 1회 간음하였다.”
검사는 제1심 진행과정에서 예비적 죄명으로 준강간을 추가하였다. “김청주는 위와 같은 일시, 장소에서 술에 취하여 누워 있는 피해자를 위와 같은 방법으로 1회 간음하였다. 이로써 피고인은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강간하였다.”
제1심은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있었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강간죄를 무죄로, 준강간을 유죄로 인정하였다.
항소심에서 검사는 다음과 같이 예비적 죄명으로 준강간미수를 추가하였다. “김청주는 위와 같은 일시, 장소에서 피해자가 실제로는 반항이 불가능할 정도로 술에 취하지 아니하여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피해자를 강간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술에 만취하여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다고 오인하여 누워 있는 피해자를 위와 같은 방법으로 1회 간음하였다. 이로써 피고인은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강간하려 하다가 미수에 그쳤다.”
항소심은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이유로 준강간을 무죄로, 준강간의 불능미수를 유죄로 판단하였다. 피고인이 상고하여 ‘준강간의 불능미수’에 관하여 대법원의 판단을 받게 되었다.
결과 발생이 처음부터 불가능하더라도 위험성이 있으면 불능미수죄로 처벌
우리 형법은 범죄의 실행에 착수하여 행위를 종료하지 못하였거나 결과가 발생하지 아니한 때에는 미수범으로 처벌한다(형법 제25조). 반면에 처음부터 결과발생이 아예 불가능한 경우는 처벌하지 않는다(예를 들어서 인형에 고통을 가하면 상대방이 죽는다고 생각하고 인형을 칼로 찌른 경우, 살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어떠한 위험성도 없어 무죄이다). 그런데 결과발생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위험성’ 때문에 미수범으로 처벌하는 경우가 있다. 즉,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로 인하여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하더라도 “위험성”이 있는 때에는 처벌한다(형법 제27조).
대법원은 ‘초우뿌리’ 또는 ‘부자’달인 물을 피해자에게 마시게 하여 살해하려고 한 사건에서 피고인의 행위는 실행의 수단의 착오로 인하여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한 때에 해당하지만 위험성이 있으므로 살인미수로 처벌한 것은 정당하다고 하였고(대법원 2007. 7. 26. 선고 2007도3687 판결), 야간주거침입절도 후 준강제추행 미수로 공소가 제기된 사건에서 피고인이 피해자의 주거에 침입할 당시 피해자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기 때문에 피고인의 행위는 대상의 착오로 인하여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한 때에 해당하지만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원심이 피고인을 주거침입 후 준강제추행의 불능미수의 유죄로 인정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13. 7. 11. 선고 2013도5355 판결).
대법원 다수의견: 항거불능 상태 아니었더라도 위험성 있으면 불능미수죄 성립
위 사례에서 강력한 경도의 폭행이나 협박이 인정되지 않아 강간죄는 무죄로 판단되었다. 피해자가 만취한 것도 아니라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을 전제로 하는 준강간죄도 무죄로 판단되었다. 그렇다면 피해자가 실제로는 반항이 불가능할 정도로 술에 취하지 않았는데도 만취하여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다고 오인하고 성관계한 경우 ‘위험성’이 있다고 보아 준강간의 불능미수에 해당한다고 볼 것인가?
이에 대해서 대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다고 인식하고 그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할 의사를 가지고 간음하였으나, 실행의 착수 당시부터 피해자가 실제로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지 않았다면,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로 준강간죄의 기수에 이를 가능성이 처음부터 없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피고인이 행위 당시에 인식한 사정을 놓고 일반인이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보았을 때 정신적·신체적 사정으로 인하여 성적인 자기방어를 할 수 없는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여 준강간의 결과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었다면 불능미수가 성립한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19. 3. 28. 선고 2018도16002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은 이에 따라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하였고, 이에 따라 피고인은 불능미수의 죄책을 지게 되었다.
대법원 반대의견: 결과발생이 절대로 불가능한 경우에 한하여 불능미수 적용해야, 이 사건은 무죄
한편 위 대법원 판결의 반대의견은 다음과 같다. “다수의견은 피고인이 범행을 시도할 당시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가 아니었음이 사후적으로 판명된 이상 피고인으로서는 피해자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던 것이고, 그리하여 준강간죄 결과의 발생은 처음부터 불가능하였던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과연 이 사건이 형법 제27조에서 규정하는 것처럼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한 경우, 즉 범죄행위의 성질상 결과 발생 또는 법익침해의 가능성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는가? 다수의견의 고민과 법리 구성은 경청할 만한 것이지만 이에 대해서 선뜻 긍정의 답변을 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다수의견은 구성요건해당성 또는 구성요건의 충족의 문제와 형법 제27조에서 말하는 결과 발생의 불가능의 의미를 혼동하고 있다.”
또한 실무적으로는 강간죄의 핵심적인 범죄사실인 “반항을 억압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 그리고 준강간의 핵심적인 범죄사실인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을 모두 이겨내 무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불능미수라는 장벽을 다시 넘어야 하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위 대법원 판결의 반대의견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만약 다수의견처럼 보게 되면, 피고인의 행위가 검사가 공소 제기한 범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그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한 때에 해당한다는 것과 다름없고, 이 사건처럼 검사가 공소장에 기재한 적용법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범죄의 구성요건요소가 되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한 때에도 불능미수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해석은 근대형법의 기본원칙인 죄형법정주의를 전면적으로 형해화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어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김한설 변호사
현재 충북 청주 및 서울에서 형사, 부동산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본지의 법률 자문위원으로, 법률지식을 읽기 쉽게 전달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다.
2026.02.10
「포스트 21」 2025년 6월호 <“남자친구인 줄 착각하여 성관계에 응했다면 준강간?”>
법률 칼럼 | 사례로 보는 법률상식 ⑥
“남자친구인 줄 착각하여 성관계에 응했다면 준강간?”
- 사례 1 -
김청주는 술에 취해 잠이 든 여성 A와 성관계 하기 위해 A의 바지를 벗기려 했는데, A는 김청주를 자신의 애인인 줄 착각하였다. A는 김청주를 자신의 애인으로 알고 “불을 끄라”고 하였고, 김청주가 애무를 시작하자 “누구냐”고 묻기는 했으나, 김청주가 “여관으로 가자”고 하자 “그냥 빨리 해”라고 하였다. 김청주는 A와 성관계 하였고, A는 이로 인해 1주간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처녀막 열상 등의 상해를 입었다. 김청주는 준강간죄로 처벌될까.
- 사례 2 -
김서울은 잠이 든 여성 B와 성관계하기 위해 B의 바지와 팬티를 벗기고 자신의 바지를 내린 상태에서 B의 가슴, 엉덩이, 음부를 만지다가 자신의 성기를 B의 음부에 삽입하려 하였다. 그런데 B가 잠에서 깨어 거부하는 듯한 기색을 보이자 더 이상 성관계 하려던 계획을 포기하였다. 김서울은 준강간죄의 미수범으로 처벌될까.
사례 1: “진심으로 원하지 않는 성관계였다”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였어야 준강간죄 성립
강간죄는 저항할 수 없는 폭행 또는 협박을 통해 피해자를 간음하는 범죄인데 반하여, 준강간죄는 약물, 만취, 수면 등으로 몸을 못 가누거나 의식을 잃는 등 이미 저항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을 이용해서 피해자를 간음하는 범죄이다.
사례 1에서 A는 김청주가 자신의 남자친구인줄로 착각하였기 때문에, 만일 김청주가 자신의 남자친구가 아니었던 것을 알았다면 아마도 성관계에 응하지 않았을 것 같다.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A가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를 하였으니 강간이 아니냐고 생각할 법도 하다.
그런데 김청주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강간죄는 강력한 폭행 또는 협박을 요건으로 하므로, 강간죄를 물을 수는 없다. 준강간죄는 어떤가?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빠져 있었는가? ‘심신상실(心神喪失)’이란 쉽게 말해 만취 또는 깊은 수면 등 의식불명의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항거불능(抗拒不能)’이라 함은 심신상실 이외의 원인 때문에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의미한다(대법원 2000. 5. 26. 선고 98도3257 판결).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피고인이 술에 취하여 안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피해자를 발견하고 갑자기 욕정을 일으켜 피해자의 옆에 누워 피해자의 몸을 더듬다가 피해자의 바지를 벗기려는 순간 피해자가 어렴풋이 잠에서 깨어났으나 피해자는 잠결에 자신의 바지를 벗기려는 피고인을 자신의 애인으로 착각하여 반항하지 않고 응함에 따라 피해자를 1회 간음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면서, “이와 같이 피해자가 잠결에 피고인을 자신의 애인으로 잘못 알았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의 위와 같은 의식상태를 심신상실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피해자가 심신상실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여 원심(항소심)의 무죄판결의 결론을 유지하였다 (대법원 2000. 2. 25. 선고 98도4355 판결).
대법원은 또 “피해자는 안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중 피고인이 안방에 들어오자 피고인을 자신의 애인으로 잘못 알고 불을 끄라고 말하였고, 피고인이 자신을 애무할 때 누구냐고 물었으며, 피고인이 여관으로 가자고 제의하자 그냥 빨리 하라고 말한 사실을 알 수 있으므로, 피고인의 이 사건 간음행위 당시 피해자가 심신 상실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주요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 2000. 2. 25. 선고 98도4355 판결).
성관계 상대방을 착각하여 진심으로는 원하지 않는 성관계였을지 몰라도(중간에 상대방이 “누구냐” 묻고 “그냥 빨리 하라”고 말한 것을 보면, 성관계를 완전히 거부한 것도 아닌 것 같다), 준강간죄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여야만 성립할 수 없다는 기본 원칙을 확인한 것이다.
사례 2 : 실행의 착수 당시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면, 행위 도중 그러한 상태에서 깨어나 성행위가 중지됐더라도 준강간 미수죄 성립
김서울의 사례는 어떤가? B는 깊이 잠들어 있었는데, 김서울이 자신의 옷을 벗기고 성관계를 하려 하자 잠에서 깨어 거부하는 기색을 보였다. 즉, B는 당초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였는데, 김서울이 성관계를 시작하려 하자 그러한 상태에서 벗어난 것이다.
김서울은 잠이 든 B의 상태를 이용하여 성관계 하려 했으나, 성관계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런데 우리 형법은 “범죄의 실행에 착수하여 행위를 종료하지 못하였거나 결과가 발생하지 아니한 때에는 미수범으로 처벌한다”(제25조 제1항)는 규정을 두고 있다. 김서울은 준강간의 실행에 착수하였으므로 그 미수범으로 처벌된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피해자의 수사기관 및 제1심에서의 각 진술을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피고인은 피해자가 잠을 자는 사이에 피해자의 바지와 팬티를 발목까지 벗기고 웃옷을 가슴 위까지 올린 다음, 피고인의 바지를 아래로 내린 상태에서 피해자의 가슴, 엉덩이, 음부 등을 만지고 피고인이 성기를 피해자의 음부에 삽입하려고 하였으나 피해자가 몸을 뒤척이고 비트는 등 잠에서 깨어 거부하는 듯한 기색을 보이자 더 이상 간음행위에 나아가는 것을 포기한 사실을 알아볼 수 있다”,
“사실관계가 그와 같다면 피고인의 행위를 전체적으로 관찰할 때, 피고인은 잠을 자고 있는 피해자의 옷을 벗기고 자신의 바지를 내린 상태에서 피해자의 음부 등을 만지는 행위를 한 시점에서 피해자의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을 할 의도를 가지고 간음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을 시작한 것으로서 준강간죄의 실행에 착수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그 후 피고인이 위와 같은 행위를 하는 바람에 피해자가 잠에서 깨어나 피고인이 성기를 삽입하려고 할 때에는 객관적으로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지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준강간미수죄의 성립에 지장이 없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00. 1. 14. 선고 99도5187 판결).
김한설 변호사
현재 충북 청주 및 서울에서 형사, 부동산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본지의 법률 자문위원으로, 법률지식을 읽기 쉽게 전달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다.
포스트 21 News
June 2025 · Publicity
2026.02.09
「포스트 21」 2025년 4월호 <“술 마시고 성관계한 후 기억이 없다면 준강간?”>
법률 칼럼 | 김한설 변호사의 사례로 보는 법률상식 ⑤
“술 마시고 성관계한 후 기억이 없다면 준강간?”
- 사례 -
김청주와 김서울은 새벽 2시쯤 대학교 어플 익명게시판에서 A가 올린 ‘산책할래요’라는 글을 보았다. 김청주와 김서울은 A와 연락하였고 집까지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받고 학교 안에서 A를 만났다. A는 이미 1차례 술자리에서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5잔 정도 마신 상태였다. A는 대학교 후문에 도착하자 자신의 집으로 가서 술을 한잔 더 하자고 제안했고, 김청주와 A는 편의점에서 과자와 소주, 맥주를 구입했고 A가 자신의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였다. A가 혼자 사는 원룸 안에서, 김청주와 김서울, A는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A는 전날 남자친구와 헤어졌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사준 비싼 옷을 입고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을 봤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청주와 김서울, A는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각각 2~3잔 마셨다. 김청주와 김서울, A는 한 침대에 누웠고, 김서울이 자는 사이 김청주와 A가 바닥에 내려가 성관계를 가졌다. 이어, 김청주가 바닥에서 자는 사이, 김서울이 A를 침대 위로 올려 성관계를 가졌다. A는 다음 날 김청주와 김서울을 준강간으로 고소했다.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과 “알코올 블랙아웃(Black Out)”의 차이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을 통해 피해자를 간음하는 범죄이다. 준강간은 만취 등으로 몸을 못 가누거나 의식을 잃은 상태를 이용해서 피해자를 간음하는 범죄이다. 강간죄는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적극적으로 파괴하는 범죄인 반면에, 준강간은 이미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을 이용하는 것이므로 폭행이나 협박을 하지 않았어도 성립할 수 있다. 준강간죄에서 ‘심신상실’이란 정신기능의 장애로 성적 행위에 대한 정상적인 판단 능력이 없는 상태를 말하고, ‘항거불능’이란 심리적,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말한다.
피해자가 깊은 잠에 빠져 있거나 술, 약물 등에 의해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은 상태 또는 완전히 의식을 잃지는 않았더라도 정상적인 판단 능력과 대응·조절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라면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에 해당한다(대법원 2021. 2. 4. 선고 2018도9781 판결 등). 반면에 ‘알코올 블랙아웃’은 알코올 성분이 외부 자극에 대하여 기록하고 해석하는 인코딩 과정(기억 형성에 관여하는 뇌의 특정기능)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행위자가 일정한 시점에 진행되었던 사실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의식상실과 구별되는 것으로, 피해자가 음주후 준강간을 당하였음을 호소하는 경우 알코올 블랙아웃 상태였다면 피해자는 기억장애 외에 인지기능이나 의식 상태의 장애에 이르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대법원 2021. 2. 4. 선고 2018도9781 판결).
인지장애 수반하지 않는 단순한 기억장애라면 무죄
술을 많이 마셨을 때 2가지의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먼저, 잠을 자는 상태이거나 완전히 몸을 가눌 수 없고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어 자신의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인 경우가 있다. 다음으로는, 당시에는 비교적 정상적으로 행동하고 대화를 이어나가지만 다음 날 기억만 못하는, “필름이 끊기는” 경우이다. 준강간에서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은 인지장애로서 전자를 의미한다. 만일 기억장애만 있는 알코올 블랙아웃이라면 준강간으로 보기에 부족하다. 김청주와 김서울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두 명이 성관계를 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편의점에서와 원룸 안에서 A는 멀쩡해 보였고 술 마시고 분위기에 따라 성관계를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단 성범죄로 고소당하면 풀어내기가 어렵지만, 성관계 당시 A가 후자의 상태였다는 점을 입증해 낼 수 있다면 가능하다. 대학에서 원룸에 가기까지 A의 걸음걸이나 말투 등을 확인할 수 있는 편의점 CCTV 등 객관적인 증거들을 확보하고, A가 평소에 필름이 끊기지만 남들이 보기에 취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음주습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A나 A의 지인의 진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면 수사, 재판에서 자신을 방어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당사자 사이 관계, 전후 정황도 심신상실 등 판단에 중요
한편, 피해사실 전후의 객관적 정황상 피해자가 심신상실 등이 의심될 정도로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었음이 밝혀진 경우 혹은 피해자와 피고인의 관계 등에 비추어 피해자가 정상적인 상태하에서라면 피고인과 성적 관계를 맺거나 이에 수동적으로나마 동의하리라고 도저히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인정되는데도, 피해자의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피해자가 단순히 ‘알코올 블랙아웃’에 해당하여 심신상실 상태에 있지 않았다고 단정하여서는 안 된다(대법원 2021. 2. 4. 선고 2018도9781 판결).
2018도9781판결의 사실관계를 보면, 28세인 피고인(남성)은 18세인 피해자(여성)와 일면식이 없었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1~2분간 얘기하다 모텔에 데리고 갔고, 피해자는 걸을 때 휘청이는 모습이 CCTV에 담겨 있으며, 피해자와 함께 술을 마시던 그의 남자친구가 피해자가 사라졌다고 경찰에 신고한 상태였고, 경찰이 객실 인터폰을 통해 피고인과 통화할 때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였다. 대법원은 서로의 관계나 정황상 심신상실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 위 사례에서도 같은 방에서 2명의 남성과 순차 성관계를 갖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A가 심신상실 상태였다고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성관념이라는 것도 사람마다 다르고, 남자친구와 헤어져 이성(異性)으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는 상황이었다면 비정상적인 경우로 보기도 어렵다. 위 사례에서 피고인들에 대하여 1심에서는 유죄판결이, 항소심에서는 무죄판결이 내려졌고 검사의 상고가 기각됨으로써 무죄판결이 확정됐다.
김한설 변호사
현재 충북 청주 및 서울에서 형사, 부동산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본지의 법률자문위원으로, 법률지식을 읽기 쉽게 전달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다.
포스트 21 News / April 2025. Publicity
2026.02.04
「포스트 21」 2024년 11월호 <부동산 경매시 임차인의 선택 계속 거주 또는 배당요구>
“부동산 경매시 임차인의 선택 계속 거주 또는 배당요구”
-사례-
김청주는 2022. 1. 1. 빌라 101호 주인 A와 보증금 130,000,000원, 임대차 기간 2022. 1. 1.부터 2023. 12. 31.까지(2년)로 하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김청주는 2022. 1. 1. 행정복지센터에서 전입신고와 임대차계약 신고를 마치고 주택임대차계약 신고필증을 받은 뒤, 같은 날 이사를 했다. 임대차 갱신 또는 갱신 거절에 관하여 김청주와 A 모두 말이 없다가, 2023. 11. 1. 김청주가 A에게 주택전세자금 대출 연장을 위한 서류를 요청했고 A가 이에 응하여, 김청주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의 대출계약이 2025. 12. 31.까지로 2년 연장됐다.
빌라 101호에는 2023. 1. 1. 근저당권자 B의 채권최고액 150,000,000원으로 하는 근저당권이 설정됐고(102호와 공동담보), 2024. 5. 1. 국가 C의 체납세액 압류 등기가 마쳐졌고, 2024. 10. 1. D의 청구금액 10,000,000원으로 하는 가압류 등기가 마쳐졌다. D가 법원에 101호에 대하여 강제경매를 신청하여 2024. 10. 15. 강제경매 개시결정이 내려졌다. 빌라 101호와 102호의 시가는 각 170,000,000원으로 형성돼 있다.
주택임대차계약 신고필증에 의한 확정일자 부여 묵시적 갱신과 연장 합의의 차이
2021. 6. 1.부터 시행된 전·월세 신고제에 따라, 행정복지센터(구 주민센터)에 방문하거나 국토교통부의 부동산거래관리시스템(인터넷)을 통해 임대차 신고를 완료하면 주택임대차계약 신고필증(확정일자)을 발급받을 수 있다. 김청주는 확정일자를 2022. 1. 1. 받았으나, 대항력은 전입신고 다음 날 생기므로 우선변제권은 2022. 1. 2. 기준으로 부여된다.
묵시적 갱신은 임대인이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 임차인이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2개월 전까지 갱신거절의 통지를 하지 않거나 계약조건을 변경하지 않으면 갱신하지 않겠다는 뜻을 통지하지 않은 경우에 2년간 연장되는 제도다. 그런데 묵시적 갱신은 말 그대로 갱신 또는 갱신거절에 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경우에 적용되는 것이다. 김청주와 A는 대출 연장 합의를 통해 임대차를 2년 연장하기로 합의했으므로, 묵시적 갱신이 아니라 명시적 구두합의에 따라 임대차는 2년 연장됐다. 묵시적 갱신의 경우에는 임차인은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지만, 연장 합의의 경우에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임대차의 확정일자가 근저당권보다 선순위인 경우 계속 거주와 배당요구 중 선택 가능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임차인인 김청주는 집에서 쫓겨나야 하는가?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4항은 임차주택의 양수인은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경매절차에서의 매수인이 새로운 임대인이 되고, 김청주는 임대차 만기(2025. 12. 31.)에 새로운 매수인에게 보증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매수인의 임대차 승계는 김청주가 제3자에 대한 대항력(점유+전입신고)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한편, 김청주는 경매절차에서 배당요구를 하여 자신의 우선변제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대항력과 확정일자를 갖춘 임차인이 배당요구를 신청하는 경우, 임대차 해지와 동일한 것으로 취급되므로 A와의 임대차 관계는 종료된다. 즉, 김청주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빌라에서 계속 거주하다가 임대차 만기에 새로운 임대인에게 보증금 반환을 청구할 수도 있고, 경매절차에서 배당요구를 하여 자신의 우선변제권에 따라 임대차보증금을 배당받을 수도 있다. 김청주의 확정일자가 B의 근저당권 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이러한 선택이 가능하다.
반대로, B의 근저당권이 2022. 1. 1. 이전에 설정됐다면, 낙찰에 의해 최선순위 근저당권이 소멸되면서 김청주의 임차권을 포함한 모든 권리가 소멸된다(소멸주의). 그래야 B의 우선변제권이 실제로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김청주는 경매절차에서 자신의 우선변제 순위에 따라 배당받게 된다.
임대차보증금과 국세 등 사이의 우선순위 체납세액 확인방법
만일 김청주가 배당요구를 하였다면 보증금 전액을 받을 수 있을까. 김청주의 임차권이 B의 근저당권보다 우선하기는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경매절차에서 몇 차례 유찰되어 빌라의 매수가액이 보증금 이하로 낮아지거나, 보증금 반환에 우선하는 국세 액수가 많다면 보증금 전액을 변제받지 못할 수도 있다.
종전에는 경매 목적물에 대하여 부과된 상속세, 증여세, 종합부동산세 등 세금인 '당해세'는 확정일자의 선후를 불문하고 보증금 반환채권에 우선하여 변제됐다. 그러나 전세사기 영향으로 국세기본법과 지방세기본법 등이 일부 개정되어, 임대차계약의 확정일자보다 법정기일이 늦은 당해세의 배분 예정액만큼은 주택임차인이 우선 변제받을 수 있게 됐다(당해세도 세금 우선변제 원칙에 대한 예외). 법정기일은 신고일 또는 납세고지서의 발송일(신고기한 내 미신고시)이다.
국세 등 체납으로 인한 압류는 부동산등기부에 기재되지만, 압류가 체납됐는지 까지는 등기부에 기재되지 않는다. 경매절차가 개시됐다면, 이해관계인인 임차인으로서 경매법원에 열람을 신청하여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임대차 개시 전에는 임대인의 동의를 받아, 임대차 계약 체결 후에는 임대인의 동의 없이도 전국 모든 세무서에서 임대인의 미납국세를 열람할 수 있다.
김한설 변호사
현재 충북 청주 및 서울에서 형사, 부동산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본지의 법률자문위원으로, 법률지식을 읽기 쉽게 전달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다.
2026.02.03
「포스트 21」 2024년 6월호 <빌라(다가구주택) 임차인인 나, 다른 임차인들보다 보증금을 우선해서 반환…
“빌라(다가구 주택) 임차인인 나, 다른 임차인들보다 보증금을 우선해서 반환받을 수 있을까”
[사례]
김청주는 다가구주택으로 등기된 빌라 301호의 임차인이고 보증금은 2억 원이다. 김청주는 2년 전인 2022년 4월 1일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같은 날 확정일자를 받았다. 김청주는 만기 이전에 집주인에게 이사를 가겠다고 통지했으나 만기가 됐음에도 보증금을 반환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빌라에는 김청주 외에도 다른 임차인 3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201호, 202호, 302호로 보증금은 각 2억 원이다.
확정일자 상의 순위는 201호, 202호, 301호(김청주), 302호 순서이다. 401호는 주인세대이다. 이 빌라에는 최우선 순위로 금융기관의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는데, 설정 당시부터 김청주가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2022년 4월 1일 경까지 피담보채무액은 17억 원이었고, 현재 피담보채무액은 15억 원이다. 빌라의 시가는 20억 원인데, 집주인의 파산 소식이 들려온다. 빌라가 경매로 넘어가면 김청주는 경매절차에서 보증금을 모두 반환받을 수 있을까. 또한 집주인을 전세사기로 고소할 수 있을까.
‘다세대 주택’과 ‘다가구 주택’의 법률적 차이
아파트와 빌라는 밖에서 보면(규모나 브랜드의 차이를 별론으로 하면) 1채의 건물에 여러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법적으로는 확연하게 구분된다. 즉, 아파트는 주로 ‘다세대 주택’으로서 각 호실별로 별도의 등기부가 생성되고 각 호실 별로 별개의 소유권이 인정된다. 반면에 ‘다가구 주택’으로 등기된 빌라는 건물 1채가 등기부 1개를 구성하고 소유권도 1개이다. 물론 빌라 중에도 ‘다세대 주택’으로서 각 호실별로 등기되는 경우도 많이 있으므로, 단순히 아파트나 빌라의 외형상의 구분 보다는 등기부의 내용을 살펴봐야 한다.
‘다세대 주택’이냐 ‘다가구 주택’이냐는 경매 절차에서 중요한 차이를 가져온다. 낙찰대금은 채권자의 우선순위에 따라 변제되는데, 선순위자의 범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세대 주택으로 등기된 아파트의 경우 선순위 근저당권 외에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본인 외에 다른 임차인이 존재할 수 없으므로). 반면에 다가구 주택으로 등기된 빌라의 경우에는 건물에 설정된 근저당 채무의 액수 뿐만 아니라, 다른 호실의 임차인들이 보유하는 보증금 반환채권의 액수나 우선순위도 전부 고려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깡통 전세’의 위험
이른바 ‘깡통전세’라고 하는 것은 건물 시가에서 근저당, 보증금 등 선순위 채무의 총액을 빼면 남는 게 없어서 내가 받은 보증금이 없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대항력 및 확정일자를 통한 우선변제권 개념에 대해서는 4월호 칼럼에서 자세하게 설명하였으므로 다시 설명하지 않는다). 보통 채무금 총액이 건물 시가의 70~80%를 넘어가면 ‘깡통’이라고 한다. 경매절차에서 건물이 제 값에 낙찰되면 다행이지만, 유찰될 경우 70~80%는 기본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50~60%까지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위 사건에서 시가대로 낙찰되고 집주인에게 다른 채무가 없다고 가정하면, 낙찰대금 20억 원에서 최우선 순위인 금융기관의 채권 15억 원이 먼저 변제된다. 나머지 5억 원은 순위에 따라 201호, 202호가 각 2억 원씩 전액을 변제받게 되고, 김청주는 보증금 2억 원 중 절반인 1억 원만 변제받을 수 있다. 마지막 순위인 302호 임차인은 받을 수 있는 돈이 없다. 김청주나 302호 임차인에게 이 사건 빌라는 ‘깡통전세’였다.
전세 사기가 성립하려면...
집주인을 전세 사기로 고소하면 어떨까? 우선, 만기 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해서 무조건 사기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속임수(기망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집주인이 당초부터 변제의사나 변제능력 없이 임대차 보증금을 받았다면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지만, 사후적으로 경제적인 사정이 어려워서 반환을 못하는 경우라면 채무불이행으로서 민사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위 사건에서 집주인에게 다른 자산과 부채가 없다고 가정하면, 김청주가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2022년 4월 1일경 집주인의 자산은 시가 20억 원의 빌라 뿐인데, 부채는 금융기관에 대한 채무 17억 원과 201호, 202호의 보증금 반환채무 각 2억 원으로 채무액 합계가 21억 원으로 집주인은 채무초과 상태에 있었다.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김청주가 집주인을 사기죄로 고소하면 유죄판결이 선고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집주인이 선순위 임차인이 전세가 아니라 월세라고 속여서 보증금을 받은 경우라면 사기죄가 성립될 가능성이 높다.
보증금 반환거부 또는 전세 사기 대응 방법
그러나 사기죄가 성립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내 보증금을 전액, 그리고 빨리 반환받는 것이다. 상책은, 임대차계약 당시 전세 보증금 반환보증에 가입하여 보험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안전하게 보증금을 확보하는 것이다. 중책은, 집주인에게 변제자력 있는 경우 민사로 임차권 등기명령을 신청하거나 보증금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하책은, 집주인에게 변제자력이 없는 경우 변제를 압박하기 위해 사기죄로 고소하는 것이다.
※ 향후에는 전세 사기의 다른 유형에 관련 내용이 연재될 예정이다.
김한설 변호사
현재 충북 청주 및 서울에서 형사, 부동산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본지의 법률 자문위원으로, 법률지식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포스트 21 News / June 2024
2026.02.02
「포스트 21」 2024년 4월호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중에 이사 갈 집 주소에 확정일자 받아도 될까?>
법률 칼럼 | 법률전문가 김한설 변호사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중에 이사 갈 집 주소에 확정일자 받아도 될까?”
주민등록(전입신고) · 확정일자 · 임차권등기명령 등 보증금 반환에 관한 제도의 이해
[법률 칼럼] 법률전문가 김한설 변호사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세’는 민법상 정확하게 말해서 ‘임대차’라고 한다. 전세사기가 사회적인 큰 문제로 대두된 후 대부분 주택임대차 계약 후 ‘주민등록(전입신고)’과 ‘확정일자’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 개념과 취지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경우 작은 변칙적인 상황에도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전세 세입자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을 하나의 사례를 통해 설명해보려고 한다. 전세 계약만료 시 보증금을 받지 못한 임차인이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중에 이사하려는 주택에 확정일자를 받아도 되는지 알아보자.
- 사례 -
빌라에 전세 세입자로 살고 있던 김철수(가명)는 2024년 2월 10일 날짜로 계약만기가 됐지만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했다. 그런데 혼인을 앞둔 김철수가 신혼집으로 새로운 아파트에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상태라 시급하게 이사를 가야하는 상황이다. 추후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임차인으로서 대항력을 갖기 위해 2024년 2월 13일, 임차권등기를 신청했다. 임차권등기 신청 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새로 이사할 주택에 전입신고는 하지 않더라도 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받아도 문제 없을까.
임차인의 대항력 = 주택 인도 + 주민등록(전입신고)
임대차계약은 임대인과 임차인 둘만의 계약이다. 그래서 원칙적으로는 임대인과 임차인 둘 사이에서만 효력이 있고, 제3자에게는 권리를 주장(대항) 할 수가 없었다. 임차인이 거주 중인 상황에 임대인이 집을 매매하거나, 주택을 담보로 돈을 대출하고 근저당을 설정하거나, 다른 임차인과 이중 계약을 해버리면 기존 임차인으로서는 강제로 퇴거하거나 거주에 관한 다툼이 발생했다.
이럴 때 임차인을 보호할 수 있도록 1981년 무렵,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생겼다. 이에 따르면 임차인이 주택을 ‘인도(점유: 실제로 집에 거주하거나 계속적으로 사용한다는 의미)’ 받아 ‘주민등록’을 마치면 제3자에게도 ‘대항력’을 주장할 수 있다. 대항력을 취득한 후에는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거나, 다른 임차인이 나타나더라도 그에 대항하여 계속 거주 할 수 있다(대항력은 전입신고를 한 다음날 발생한다. 다만 전입신고 다음날 이후에 주택을 인도 받으면 인도 받은 날 발생한다).
보증금 반환 우선변제권 = 임차인의 대항력 + 확정일자
‘대항력’은 제3자에 대항하여 임대차계약에서 약속한 만기 시점까지 주택에 계속 거주할 수 있는 권리이나, 그것만으로는 ‘우선변제권’까지 확보할 수는 없다. 즉, 대항력을 갖춘 경우 만기 후 주택에서 나가면서 보증금을 받을 수 있지만, 다른 임차인들보다 ‘우선’하여 받을 수 있는 권리까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선변제권을 얻으려면 ‘확정일자’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앞서, 주택을 ‘인도’ 받아서 ‘주민등록’을 마치면 대항력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하여 주민 센터나 인터넷 등기소를 통해 임대차계약서에 ‘확정일자’(예를 들어 2022년 2월 10일)를 받을 수 있다. 이와 같이 확정일자를 받는다면, 이후 임대인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근저당을 설정하더라도 건물이 경매가 진행될 때 그들보다 먼저 보증금을 받을 수 있는 우선변제권이 생긴다(물론 소액보증금은 확정일자 없이도 우선변제권을 가지지만 법이 인정하는 극히 소액이 아니라면 해당되지 않는다).
임차권등기명령 제도 = 임차인의 대항력 + 우선변제권
이제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갖춘 상황에서, 임대차계약에서 명시된 만기 날짜가 도래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임차인이 주택에서 퇴거 시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거나 경매절차를 통해 반환받는다면 문제가 없다. 문제는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줄 형편이 되지 않고, 경매도 진행되지 않는 경우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인도와 주민등록을 대항력 취득 및 존속요건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이사를 해서 ‘인도(점유)’ 받지 않는 상태가 되거나 ‘주민등록’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대항력을 잃게 되고, 그 결과 당연히 우선변제권도 잃게 된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이런 경우에 대비해서, ‘임차권등기명령’이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임대차 만기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증금이 반환되지 않는 경우, 임차인은 법원에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할 수 있고 부동산 등기부에 임차권등기명령이 기재되면 그 즉시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확보된다. 임차권등기명령을 받은 후에는 이사를 가거나 주민등록을 옮기더라도 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있는 권리를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위 사건에서 김철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주민등록’과 ‘확정일자’는 연관된 제도이기도 하지만, 엄연히 별개의 제도이다. 결론적으로, 대항력(=인도+주민등록) 유지를 전제로 하는 임차권등기명령 신청절차가 진행 중이더라도, 이사할 주택에 관한 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받더라도 문제가 없다. 김철수는 새로운 임대차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받아두고, 임차권등기명령을 받은 뒤 새로운 주소로 이사하면서 주민등록을 하면 된다. 이 경우 새로운 주소지에 대한 우선변제권은 주민등록 다음 날을 기준으로 확보된다.
※ 추후에는 전세사기 유형 및 대처법, 전세사기 특별법에 관한 내용이 연재될 예정이다.
Post 21
포스트 21 News / April 2024
2026.01.21